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말라위 관계 (문단 편집) === 20세기 === 보통 아프리카 국가들이 1980년대 [[대한민국 제5공화국|제5공화국]] 시절 [[1988 서울 올림픽]] 유치 성공으로 인한 [[남북한 아프리카 외교전]]으로 외교적인 관계를 시작한 것과는 달리, 한국과 말라위의 관계는 말라위가 독립한 이듬해인 1965년에 수교를 맺었으니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외교적인 관계를 맺었다.[* 의외로 [[남아프리카 공화국]]과는 1990년대 초 이전까지는 외교관계가 없었는데, 남아공이 [[남아프리카 연방]] 시절 [[한국 전쟁]] 참전국이라 최우선 수교국임에도 불구하고 [[아파르트헤이트]] 때문에 [[넬슨 만델라]]의 복권 후 대통령 취임 전까지는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맺을 수 없었다.] 이는 [[헤이스팅스 반다]]가 집권하던 [[냉전]] 시기, 주변국인 [[모잠비크]]가 동아프리카의 대표적인 사회주의 국가였고 제3세계 국가였던 [[탄자니아]]나 반식민주의 노선을 취했던 [[잠비아]]와 [[짐바브웨]] 역시 독립의 이유로 소련의 지원을 받고 있었지만[* 특히 짐바브웨의 경우 독립 과정에서 영국계 백인들의 학정 때문에 꽤나 고생을 했으며, 이때문에 공산주의 국가들과 친분이 깊었다.], 말라위는 유일하게 자유진영 노선을 취했던 국가였기 때문이다. 말라위는 당시 주변국들과는 다르게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으로 악명 높은 [[남아공]]과 모잠비크의 식민모국이었던 [[포르투갈]]을 지지했다. 말라위와 사정이 비슷하긴 했지만 남아공이 지척에 있던 보츠와나마저 주변국인 앙골라와 나미비아의 독립에 모잠비크 독립까지 지지하고 있었으니 말라위만 사실상 왕따가 된, 반식민-독자주의 노선을 걷지 않은 나라 찾기 힘들 정도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제1세계 국가였다. 그래서 냉전 시기에는 여느 아프리카 국가에는 매우 드물었던 대한민국 대사관이 있었을 정도였으며, 적은 수이긴 하지만 한국인들이 이미 1970년대 중반부터 토목공사 사업이나 선교 등으로 일찌감치 진출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